중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 발행에 속도를 내는 이유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조만간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 발행에 나설 태세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디지털 화폐’를 중앙은행이 선보이는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사업은 엄격히 금지해왔다. 국가가 아닌 제3의 다른 누군가가 화폐를 찍어내는 것을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랬던 중국이 블록체인 분야를 선도하고 국제금융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왜 디지털 화폐 발행에 속도를 낼까. 시장에선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영향을 줄이고 ‘위안화 국제화’에 시동을 걸려는 의도로 분석한다. 오랫동안 중국은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에 불만을 표시하고 자국 통화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하였다. 하지만 이미 달러가 패권을 쥔 전통적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위안화의 국제화가 어렵다고 보고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금융권에서 위안화 국제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기축통화가 되려면 화폐가 널리 통용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인민은행은 휴대폰의 NFC 기능을 이용하여 앱과 앱이 토큰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블록체인에서 토큰이라는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애플페이의 암호화된 NFC 거래 방식에 결합한 것이다.
중국 중앙은행(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가 안착하려면 가치가 들쭉날쭉한 일도 없어야 한다. 이는 발행량을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유통량이 2100만 개로 고정된 비트코인의 경우 수요가 조금만 늘어도 가격이 폭등한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과 같은 가치 저장수단은 될 수 있어도 결제수단으로 쓰기는 어렵다.
반면 중국은 인민은행이 디지털화폐 발행량을 조절해 그 가치를 위안화에 1대 1로 고정한다. 이른바 ‘스테이블 코인(안정코인)’이다. 리브라도 달러, 유로, 엔, 파운드로 구성된 약 10억 달러 정도의 자산을 지불준비금으로 마련해 가치를 보증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중국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는 표면적으로는 국내용으로 보이지만 국경 간 거래를 단순화하는 작업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 인민은행은 디지털화폐를 중국 공상·건설·농업·중국은행 등 정부 소유 4개의 상업은행과 알리바바·텐센트·유니온페이 등 인터넷 기업을 통해 유통할 계획이다. 초기엔 중국 내에서만 사용되지만 다음에 해외 송금과 결제도 가능하게 된다. 디지털 화폐가 위안화의 국제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알리페이는 중국의 GDP의 16%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니온페이 카드는 비자 카드처럼 전 세계 177개국에서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영향력 하에 있는 국가에 국제적으로 카드를 발급함으로써 중국 디지털 화폐를 아프리카와 미얀마와 라오스 등 동남아 주변국으로 확대 광범위하게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새로운 결제통화가 나온다고 해서 곧바로 소비자들이 이를 채택하진 않을 것이다. 국가마다 현금이나 신용카드, 모바일 결제 등 결제방식이 다양한 데다 익명성이나 수수료, 이자 등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다른 만큼 그에 따른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 디지털 위안화가 위챗페이나 알리페이 등을 대체하는 무현금·모바일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기존 결제 인프라와의 호환이나 접근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만약 중국이 중국, 러시아, 이란, 터키, 시리아, 북한, 베네수엘라 등 미국 지배에 반발하는 국가를 정리해 반미, 반 달러 경제권을 구축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각국 중앙은행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크로스 체인을 만들어 통화별 CBDC(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화폐)를 연결하는 합성 패권 통화(SHC)가 등장하면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러시아 기업이 중국에 물건을 팔기로 하고 탈중앙화한 에스크로계좌에서 CBDC를 자동으로 주고받는 스마트계약을 체결한다. 러시아 기업이 물건을 배송하고 나면 중국 업체가 입금한 위안화로 산 CBDC는 자동으로 전송되고 이를 받은 러시아 기업은 루블로 바꾸면 그만이다. 이 경우 수출입 대금결제의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환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고 비싼 환 헤지를 실시할 필요도 없다. 굳이 달러화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의 디지털화폐가 국경 없는 자본을 이동할 수 있게 하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압력이 중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달러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이를 용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인민은행이 고민해야 할 문제는 여기에 있다.
중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 발급을 결정한 또 다른 이유는 일개 민간기업에 불과한 페이스북이 내놓은 `리브라(Libra)`라는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가 견고해 보이기만 하던 기존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을 키웠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방대한 유저와 인프라를 갖춘 민간기업들이 암호화폐를 도입한다면 국가가 가지는 화폐 발행의 독점적 지위도 위협할 수 있다 해석한 것이다.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은 중앙은행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발행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 발행과 유통 등은 물론이고 (중앙은행이 거래 익명성을 보장하도록 선택하지 않는다면) 모든 금융거래까지 추적할 수 있다. 탈중앙화라는 암호화폐 가치와는 거리가 멀지만, 중앙은행은 디지털화폐 발행은 민간 암호화폐의 도전을 선제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더불어 디지털화폐를 중앙집중형으로 관리하게 되면 모든 거래 이력이 추적 가능해 탈세가 불가능하게 되므로 세수 또한 증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는 인민은행이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중앙 집중식 디지털화폐가 될 전망이다. 기반이 되는 기본 철학사가 중국의 디지털 화폐는 탈중앙화와 익명을 추구하는 비트코인 등 기존의 가상화폐와는 정반대의 특징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경우 기존 실물화폐인 현금 발행의 메커니즘과 유사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 및 인구를 보유하고 있어 중앙은행이 단독으로 디지털화폐 발행 및 교환 업무를 담당하는 ‘1단계 체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은행의 참여를 통해 실물화폐인 현금을 디지털화폐로 쉽게 교환하고 은행의 금융 중개 기능 약화도 완화하는 등 디지털화폐 도입에 따른 충격 최소화하고자 하는 의미서 2단계 체제가 운영될 전망이다.
2단계 체제에서는 중국인민은행이 은행을 대상으로 디지털화폐 발행 및 회수 업무를 담당한다. 은행들은 중앙은행으로부터 공급받은 디지털화폐를 개인 및 기업 등 일반 경제주체에 공급하고 회수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의 명칭을 CBDC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CBDC는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약자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화폐를 뜻한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화폐를 디지털화해 발행한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한다면 역시 CBDC다.
CBDC는 가상화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떤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기술을 이용해 탈중앙화 화폐를 발행한다면, CBDC도 가상화폐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방식의 중앙집중형 화폐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탈중앙화 가상화폐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즉,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은 ‘빅브라더(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 )’ 를 현실화 할 수 있는 수단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점은 시중은행들의 요구불예금을 대체함으로써 은행들이 민간에 대출하는 신용 공급이 축소되는 등 금융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이 시중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 신용 공급은 물론 투자와 소비 등 총수요를 조절하는 이른바 신용 경로가 막힐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큰 걸림돌이다.
위에서 언급한 부작용과 문제점이 있음에도 각국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도입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부작용이나 불확실성을 보완하여 중앙은행에 의해서 디지털화폐를 보급한다면 기존 화폐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